데일리 필사
모비 딕 통필사 — 32장 「고래학」 일부
파이롯트 커스텀 823 F닙과 디아민 프러시안 블루로 창난지에 옮겨 쓴 『모비 딕』 32장 「고래학」 일부의 필사 기록입니다.


며칠 만에 다시 『모비 딕』 통필사 노트를 펼쳤다.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한동안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밀린 분량을 한꺼번에 채우려 하기보다는 32장 「고래학」의 한 부분부터 천천히 이어 썼다. 잠시 멈춘 뒤의 첫 페이지라 글씨의 모양이나 진도보다 다시 펜을 들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다.
32장 「고래학」은 앞선 장면 중심의 서사에서 잠시 벗어나, 이슈멜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래를 분류하고 설명하는 장이다. 책의 판형에 빗대어 고래를 여러 무리로 나누고, 각 종류의 크기와 생김새, 고래잡이들 사이에서 불리는 이름을 차례로 기록한다. 사진에 담긴 부분에서는 한 분류가 끝나고 다음 분류가 시작되며, 큰고래류와 흑고래류의 특징이 이어진다. 학술적인 목록처럼 보이면서도 이슈멜 특유의 단정과 농담이 섞여 있어 평범한 백과사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난다.
처음 읽을 때는 고래 이름과 설명이 연속해서 나오는 부분이라 줄거리보다 느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옮겨 쓰니 멜빌이 거대한 대상을 정리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기준을 세우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하나의 분류를 마치고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는 문장 구조가 반복되면서도, 고래마다 덧붙이는 관찰과 표현이 조금씩 달라 필사할 때는 예상보다 리듬이 있었다. 이야기의 진행을 잠시 멈추고 바다의 세계를 문장으로 정돈하는 과정 자체가 이 장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도 파이롯트 커스텀 823 F닙에 디아민 프러시안 블루를 넣고 창난지에 썼다. 항목명과 설명이 촘촘하게 이어지는 페이지라 가는 F닙이 한글을 작게 정리하기에 편했고, 펜을 강하게 누르지 않아도 선이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프러시안 블루는 검정보다 부드러운 어두운 청색이라 글자가 많은 면에서도 답답하지 않으면서, 제목과 본문을 또렷하게 구분해 주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분류가 넘어가는 흐름과 페이지 전체의 글씨를 담았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F닙의 선 굵기와 프러시안 블루가 창난지 위에서 보이는 차분한 색감을 가까이 확인할 수 있다. 획이 겹치는 곳은 조금 더 짙고, 빠르게 지나간 부분은 푸른 기운이 가볍게 남아 긴 문단 안에서도 미세한 농담이 보인다.
며칠 쉬었다는 사실 때문에 통필사가 끊어진 것처럼 느끼지 않으려 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노트를 덮어두고, 괜찮아진 날 다시 한 문장부터 시작하면 된다. 매일 빠짐없이 쓰는 것만이 꾸준함은 아니며, 멈춘 자리로 돌아오는 일도 긴 책을 끝까지 옮겨 쓰는 과정의 일부다. 오늘은 32장 전체를 끝내는 것보다 다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 기록을 남겼다.
펜 파이롯트 커스텀 823 F닙
잉크 디아민 프러시안 블루
종이 창난지
책 허먼 멜빌 『모비 딕』
범위 32장 「고래학」 일부 — 통필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