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필사
모비 딕 통필사 — 29장
파이롯트 커스텀 823 F닙과 디아민 프러시안 블루로 창난지에 옮겨 쓴 『모비 딕』 29장의 필사 기록입니다.


오늘은 『모비 딕』 통필사를 이어가며 29장을 창난지에 옮겨 썼다. 갑판을 계속 맴도는 에이해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스터브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이 순식간에 거칠어지는 장면이다. 눈으로 읽을 때는 에이해브의 날카로운 말투가 먼저 들어왔지만, 한 문장씩 쓰면서 따라가니 말을 꺼냈다가 물러서지 않으려는 스터브의 태도도 더 또렷하게 보였다.
29장은 묘사와 대화가 빠르게 오가고 문장에 감정의 높낮이가 분명하다. 에이해브가 선원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설명을 길게 덧붙이지 않아도, 갑판의 발소리와 짧은 대화만으로 배 안의 팽팽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통필사를 하면 줄거리만 읽을 때 지나치기 쉬운 말투와 문장 호흡을 천천히 확인하게 되는데, 이번 장에서는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감이 특히 잘 느껴졌다.
오늘은 손이 조금 떨려서 평소보다 획과 글자 간격이 고르지 않았다. 그래도 페이지를 다시 쓰거나 필사를 미루지는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끝까지 이어갔다. 매일 같은 글씨를 쓰는 것은 어렵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도 결국 그날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반듯한 한 장을 만드는 것보다, 좋지 않은 날에도 다음 문장을 이어 썼다는 사실을 남기는 쪽이 통필사에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용한 펜은 파이롯트 커스텀 823 F닙이고 잉크는 디아민 프러시안 블루다. F닙은 글자가 많은 소설 문단을 한 페이지에 차분하게 담기 좋았고, 프러시안 블루의 어둡고 차분한 청색은 검정 잉크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긴 글을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창난지에서도 글씨가 또렷하게 보여 에이해브와 스터브의 팽팽한 장면을 천천히 따라 쓰기에 잘 맞는 조합이었다.
첫 번째 사진에는 오늘 옮겨 쓴 29장의 전체 흐름을, 두 번째 사진에는 프러시안 블루의 색과 글씨가 잘 보이는 부분을 가까이 담았다. 손의 떨림까지 함께 남은 페이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늘의 필사 기록다운 한 장이 되었다.
펜 파이롯트 커스텀 823 F닙
잉크 디아민 프러시안 블루
종이 창난지
책 허먼 멜빌 『모비 딕』
범위 29장